양귀비


절세의 미인 양귀비(AD 719-756)는 사천성에서 태어나 17세에 현종의

18왕자 수왕(壽王)에게 출가하였는데 현종이 정처(正妻)가 죽자 후궁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때 어떤 못된 호색가인 신하가 현종에게 넌지시 18왕자의 아내가

미인이라고 귀띰하자 마음이 동한 현종이 온천궁에 행차하면서 살펴보니

과연 천하 미인인지라 남의 눈을 피하여 통정하였다.

아비가 며느리를 범한 것이다.

 

현종이 바로 양귀비를 데려오기에는 곤난하여 양귀비를 일단 절에보내

머리를 깍고 여승으로 만들었다가 환속시킨 후 27세에 귀비로책봉하였다.


그후 양씨가는 권문세족이 되고 그 중에서 친척 오빠인 양국충은 권력을

잡고 안하무인(眼下無人)이 되었다.

 

양귀비가 남쪽 열대 과일인 “여지”를 좋아하니 급마로 수송하여

진상하도록 했다. 귀비는 젊고 현종은 늙었으니 양귀비가 만족할 수

없었다. 이때 북방의 절도사 “안록산”이 궁중출입을 하면서

양귀비는 모자의 연을 맺고 같이 목욕도 했다.

 

하루는 두 연놈이 침방에서 부스럭 부스럭 하며 운우의 정이 절정에

이르렀을때에 갑지기 현종이 문앞에 당도하니 안록산은 다락에 숨고

양귀비는 즉석에서 시 한수를 읊었다.

 

천장하우(天將下雨)하니 지광습(地光濕)이요 (하늘에서 장차 비가

내리니 땅이 습하고) 폐하당문(陛下當門)하니 첩신동(妾身動)

(陛下가 문에 당도하니 첩의 몸이 움직이네)

 

현종이 좋아 홀딱 속았다.

한편으로 양국충과 안록산이 권력싸움을 벌려 변방을 지키던 안록산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하여 쳐내려오니 황제의 호위군사는 대패하고

낙양이 함락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안록산이 장안까지 탈취하니 현종과 양귀비는 촉국(燭國)

으로 파천(播遷)하였다. 파천중 신하들은 양귀비를 국정문란의 책임자로

지목하여 자살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절세의 미인 양귀비는 37세로 이승을 하직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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