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아버지가 오셨다.

 

셋째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나 보다.

 

아무 연락도 없이 들른 아버지는

 

신문지에 둘둘 말아 싼 걸 말없이 내민다.

 

 명절 아니고는 맛보지 못하던 귀한 쇠고기다.

 

부엌문을 열고는 어둡지 않으냐고 묻는다.

 

 재래식 부엌이 어두컴컴하다.

 

부뚜막에 까만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땔감이 수북이 쌓여 있다.

 대학까지 공부시킨 딸이

 

 시골에서 고생하는 게 몹시 가슴 아프셨나 보다.

 

작은 방은 올망졸망한 살림살이로 꽉 차있어

 

요와 이불 하나도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다.

 

아버지는 “딸 내외가 자귀나무(합환수)처럼 밤이면 포개어 자겠구나”고 여기겠지.

 

아버지가 오신 게 너무 좋았다.


밥을 새로 안치고 무와 대파를 썰어 소고깃국을 끓인다.

 

 땅에 묻어둔 항아리에서 잘 익은 김치를 꺼내고 김도 굽는다.

 

암탉이 헛간에서 금방 낳은 계란을 꺼내와

 

 파 쫑쫑 썰고 소금 알맞게 간하여

 

 잘 저은 후 중탕해서 찐다.


점심을 드신 아버지는 
 

비좁은 방안이 답답한지 과수원을 한 바퀴 돌았다. 
 

 아버지는 빈터를 가리키며
 

“이 자리에 집을 지으면 좋겠군”하고
 

혼잣말을 한다. 단칸방이어서 그럴까.
 

일이 바쁘다며 하룻밤도 주무시지 않고
 

가는 아버지가 못내 섭섭하다.

 

싱그러운 초여름,
 

하루는 짐을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마당 안으로 불쑥 들어오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웬 차일까 싶어 얼른 달려가 보았다.
 

아버지의 낡은 트럭이다.
 

아버지가 집 지을 자재를 차에 가득히 싣고 왔다.


아버지는 트럭 여섯 대에 운전기사들을 두며 운수업을 했는데,

 

어느 해 갑자기 부도가 났다.

 

큰 사위가 장인에게 중고트럭 한 대를

 

장만해준 덕에,

 

아버지는 연탄공장에서 연탄을 떼다가 팔았다.

 

아버지는 얼굴이 늘 숯 검둥이가 되어도

 

웃기만 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을 텐데도

 

시집간 딸까지 챙기니 눈물겹다.

 

아버지는 손수 설계한 집 도면을 놓고

 

“김서방, 돈 벌면 더 좋은 집 짓고

 

우선 방이라도 숨통 트이게 짓게”라고 한다.

 

사위는 장인 앞에서 송구스러워한다.

 

이튿날, 아버지는 대구에서 집 지을 목수와

 

인부를 데리고 왔다.

 

마침내 보름 만에 파란 슬레이트 지붕의 집 한 채가 지어졌다.

 

큼직한 방 한 개와 주방, 목욕탕이 전부이지만

 

대궐이 부럽지 않았다.

 

남편과 같이 방과 부엌을 도배했다.

 

천장을 바를 때는 풀칠한 천장지가 머리 위에

 

떨어져 머리카락이 온통 풀칠로 뒤범벅되었다.

 

재래식 부엌에서 지내다가 입식 주방을 가지니

 

꿈만 같다.

 

뜰에 핀 장미꽃 한 송이를 유리잔에 꽂으니 분위기가 살아난다.

 

아버지가 창안한 목욕탕이 실용적이다.

 

드럼통을 개조한 것인데 바깥에서

 

아궁이에 나무를 때면

 

드럼통 안의 물이 데워진다.

 

목욕탕 안에서 수도꼭지를 틀면  온수가 나오도록 장치해 놓았다.

 

과수원에서 땀 흘려 일하고 난 저녁에는

 

아버지 덕분에 더운물로 씻을 수 있었다. 새집으로 이삿짐을 옮기던 날,

 

아버지가 우리 집에 들렀다.

 

그날도 “열심히 살라”고 말하곤

 

이내 연탄트럭에 오르셨다.

 

아버지의 고물 트럭이 집 앞 냇물을

 

하얗게 가르며 미루나무 사이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냇가에 서 있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언젠가 아담한 집을 지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나 보다.

 

언덕 위에 예쁜 집을 새로 지었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 같은

 

빨간 벽돌의 이층집을.

 

벽 한쪽은 유리블록으로 장식하고

 

창마다 밝은 햇살이 비쳤다.

 

뜰에는 온갖 과일나무와 사계절의 꽃을 심었다.

 

훗날 더 좋은 집을 지어 살라던 아버지의 소망을 이룬 셈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좋은 날,

 

우리 곁에 이미 안 계셨다.

 

함께 집을 지으며 못난 딸에게

 

인생을 가르쳐 주었던 아버지.

 

아버지처럼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파이고

 

손마디가 두툼해진 내게

 

그날의 아버지의 말이 다가온다. 

 

“열심히 살라고, 그러면 새 날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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