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사라져도 ‘부정’은 남는다’

헌법재판소 간통죄 처벌 조항 위헌 선고 “성생활 영역을 국가가 개입·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2월26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정 이후 62년간 유지됐던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을 선고했다. 과거 네 번의 합헌 결정을 했다가 다섯 번째 만에 위헌으로 뒤집은 것이다. 헌재는 “성도덕에 맡겨야 할 내밀한 성생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간통은 대부분의 문명권에서 죄로 간주됐다가 20세기 이후 개인의 자유권이 확대되면서 처벌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유교에 기반한 전통적 가치관이 남아 있는 한국에선 비교적 늦게 간통죄가 폐지된 셈이다. 이번 결정이 결혼제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예상되는 변화와 궁금점을 문답 형식으로 살펴본다.

 

62년 만에 간통죄 처벌 조항 위헌이 선고됐다.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처벌 조항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간통 등을 주요 소재로 다뤘던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한 장면. KBS 제공
이혼 과정서 달라지는 점 없어

간통죄로 유죄가 확정됐거나 재판 중인 사람은 어떻게 되나?

헌재 결정으로 간통행위를 처벌하던 형법 제241조는 곧바로 효력을 잃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직전 합헌 결정이 있었던 2008년 10월30일 이후 유죄가 확정되거나 현재 재판 중인 사람들은 모두 구제 대상이 된다. 대검찰청 집계를 보면, 마지막 합헌 결정 다음날부터 지난 1월까지 기소된 사람은 5466명이다. 이들 가운데 유죄가 확정되거나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이는 3천여 명으로 추산된다. 유죄가 확정된 이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 무죄를 선고받게 된다.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검찰의 공소취소에 따라 공소기각 결정을 받게 된다. 2·3심 중이라면 검찰이 공소취소를 할 수 없어 법원이 무죄판결을 한다. 수사 중인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된다. 구속된 사람들은 즉시 석방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구속 수감됐던 이들은 그 일수만큼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마지막 합헌 결정 전에 간통을 했으나 확정판결은 그 뒤에 받은 사람은 재심 대상이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법원 판결을 받아봐야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법의 취지상 이들도 재심 대상이 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간통죄가 없어지면 불륜이 조장되고 성도덕이 문란해지는 것 아닌가?

간통죄 유지 입장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죄 폐지로 “성도덕의 한 축을 허물어 사회 전반에서 성도덕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박한철·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간통죄가 간통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자료가 없다. 간통죄를 폐지한 나라에서 성도덕이 문란했다거나 이혼 증가 통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재판관 다수 의견은 이미 우리 사회가 성의식이 충분히 개방된 상태여서 간통죄가 ‘규율’로서 기능을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이제 간통을 해도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간통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으로 비난받을지언정 형사처벌을 할 사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혼 과정에서도 달라지는 점은 없다. 민법 제840조는 이혼 청구가 가능한 이유들 중 하나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간통행위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과 연인관계를 맺는 행위도 해당된다.


꼭 덮쳐야 나오는 증거 필요한 것 아냐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어떻게 입증하나?

간통죄 폐지로 수사기관이 불륜행위 자체에 개입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도움으로 이혼소송에 쓸 증거를 수집하는 일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드라마에서 보듯, 경찰관이 간통 현장을 덮치는 일은 없어진다. 다만 당사자가 사설 심부름센터 직원을 고용해 물증을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이혼소송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간통죄의 처벌 대상은 직접적 성교행위였다. 이혼 사유인 ‘부정한 행위’는 간통행위를 입증하지 못해도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깨졌다고 할 정도의 상태를 입증하면 된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밤이나 새벽에 장시간 통화하거나 애정표현을 한 문자메시지 등 불륜의 증거가 있으면 충분히 부정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여성을 보호하는 장치가 사라진 것 아닌가?

과거에는 간통죄 처벌이 이혼소송에 큰 영향을 줬다. 여성이 사회·경제적 약자였고, 남편의 간통에 대해 아내가 고소를 하면 고소 취소 조건으로 위자료나 재산 분할을 받아내는 경제적 기능을 수행했다. 가해자가 구속되면 피해자가 합의금을 받아내기 쉬워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불구속 재판 원칙이 강화되면서 간통죄의 이런 ‘기능’은 약화됐다. 과거 30년간 간통 혐의로 기소된 5만2982명 중 구속 기소자는 3만5356명(66.7%)이었지만, 지난 5년간만 보면 5466명 중 22명(0.4%)만 구속 기소됐다. 또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됐고, 1990년 민법 개정 이후 주부의 가사노동 기여도가 재산 분할에 반영되는 등 이혼소송 과정에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됐다. 즉, 간통죄가 아니더라도 다른 요소들로 여성을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됐다는 뜻이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나?

기존에 법원에서는 간통을 저지른 사람이 배우자에게 지급할 위자료로 1천만~3천만원 정도를 인정해왔다. 간통죄로 처벌받거나 해고당하는 등 불이익을 받으면, 법원은 ‘이중처벌’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위자료를 많이 책정하지 않는 경향도 보여왔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이런 ‘감경 요인’이 사라져 위자료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정도로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성계에서는 간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올리거나, 재산 분할에도 간통을 고려 사항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위자료나 재산 분할 규모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변화할 수 있지만, 간통죄 폐지로 당장의 변화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배우자와 불륜관계를 맺은 제3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가능하다.

제3자 상대 손배소는 여전히 가능

바람난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게 되나?

현재 민법과 대법원 판례상 ‘잘못이 있는’(유책) 배우자는 기본적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혼인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파탄 난 상황이라면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 청구권을 인정한다. 간통죄 폐지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은 직접 관련이 없다. 따라서 헌재 결정이 법원의 이혼 판결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법원은 결혼생활 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파탄의 책임이 무거운 쪽의 이혼 청구를 조금씩 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추세다. 간통을 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잘못이 있으니 이혼 청구를 못한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간통에 이르기까지의 상황과 부부 양쪽의 책임을 모두 따져본다는 것이다.

이경미 <한겨레> 사회부 법조팀 기자 kmlee@hani.co.kr

'일 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뇨에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  (0) 2015.03.09
당뇨환자와 음식(기름진것과 단것)  (0) 2015.03.09
촛불과 냄새  (0) 2015.03.03
太와 泰의 차이  (0) 2015.02.26
바보 똥개 뽀삐(박정윤 수의사의 에세이)  (0) 2015.02.25

+ Recent posts